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묜 티모셴코 (문단 편집) === 그의 [[리즈시절]], [[겨울전쟁]] === [[핀란드]]와 벌인 [[겨울전쟁]]에서 티모셴코는 보로실로프의 후임으로 붉은 군대를 지휘했다. 당시 소련군의 수준은 한심해서, 소련군의 포격은 항상 일정한 시각에 전 전선에 시작되었고 항공 폭격 또한 마찬가지였다. [[핀란드군]]은 이런 뻔히 예측할 수 있는 공격을 비웃으면서 소련군의 공격을 잘 피할 수 있었다. 티모셴코는 기본적인 '집중'의 원리조차도 잊어버린 핀란드 전선의 소련군에게 다시 상식적인 지휘와 전술을 부여했고, 그 결과 소련군의 포격 정밀도는 더욱 향상되었고 포격과 항공 공격의 집중도는 훨씬 늘어났다. 그리고 티모셴코는 몇 개 전차 여단과 기타 지원 부대들로 구성된 기동 집단들을 구성해 전선 돌파에 써먹는 등 자신이 기갑덕후임을 인증하며 핀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. 티모셴코는 겨울전쟁 이후 소련 [[원수(계급)|원수]]로 진급해 기존의 원로 장성들을 능가했고, 국방인민위원([[국방장관]])에 임명되며 군부의 1인자로 등극하게 되었다. 덕분에 '우리 곁의 티모셴코', '정치위원 티모셴코의 노래', '티모셴코 원수의 노래'까지 합해서 군가 3곡이 작곡되었고, 각종 기념일마다 군부의 대표로 연설을 하였다. 대숙청때 살아남은 고급 군인들 중 [[보리스 샤포시니코프]]와 함께 몇 안되는 개념군인으로서 [[미하일 투하쳅스키]]가 적극 실현하려다가 숙청의 구실이 된 군의 기계화를 조용히 계속 추진했다. 어쨌든 현대전에 대한 개념이 있는 사람이 독소전쟁 개전전에 국방장관을 맡은 것은 소련으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. [[그리고리 쿨리크]] 같은 무개념 [[똥별]]들이나 [[세묜 부됸니]] 같이 시대에 뒤떨어진 장성이 국방장관을 맡았더라면 아마 소련은 [[바르바로사 작전]] 때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. 이렇게 티모셴코의 리즈시절은 찬란하였다. 그러나..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